Founder’s Story ①
- Canada Orient Shipping COSHIP
- 4월 14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17일
COSHIP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회사를 오래 운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저는 1996년, 뉴질랜드 선사의 한국 에이전트 사무실에서 처음 물류 일을 시작했습니다. 4년 뒤 새로운 회사로 이직했고, 2002년에는 그 회사 영업부에서 일하던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10개월과 두 살이었던 두 아이와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왔습니다. 캐나다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부터 지금의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저에게 시차 적응은 사치였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영어도 서툴렀고, 운전도 익숙하지 않았고, 아이들은 아직 너무 어렸습니다. 낮에 사무실에서 다 끝내지 못한 일은 아이들을 재운 뒤 집에서 다시 이어서 해야 했습니다. 가족들 몰래 혼자 울었던 날도 많았습니다. 그때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 일했습니다.
당시 캐나다에는 유학생과 이민자들의 이동이 매우 활발했고, 해외이사 서비스가 회사의 가장 중요한 중심 업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으로 돌아가던 한 유학생에게서 이민 가방 두 개를 한국으로 보내고 싶다는 상담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학생에게는 모두 소중한 짐이었지만, 당시에는 이런 소량 화물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회사들이 해외이사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계기로 선박을 이용한 소량 택배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후 고객들의 필요에 따라 항공 택배 서비스까지 확대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 회사의 많은 서비스는 이렇게 고객의 작은 이야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업을 시작한 고객이 한국에서 물건을 들여오고 싶다는 상담에서 포워딩 서비스가 시작되었고, 캐나다에서 한국 물건을 구매하기 어렵다는 고객들의 불편함에서 구매대행 서비스가 만들어졌으며,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고객들과 함께 3PL 서비스도 자연스럽게 확장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제가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만 해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북한이냐 남한이냐"라는 질문이 대부분이었고, 그 외에는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던 시기였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김을 가져가면 검은 종이를 먹는다고 놀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캐나다인들이 K-pop을 이야기하고,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한국 제품을 찾습니다. 저는 그 변화를 이곳에서 직접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COSHIP 역시 한국과 캐나다를 연결하는 일에서 출발해, 이제는 중국, 일본, 미국, 유럽, 호주 등 전 세계 다양한 고객들과 함께하는 물류 회사로 성장해 왔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고객의 필요에 맞추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며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홈페이지를 새롭게 정리하면서, 우리가 어떤 과정을 지나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지금과 같은 서비스들을 만들게 되었는지를 조금 더 편안한 이야기로 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 글이 COSHIP이라는 회사를 이해하는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그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2007년, 코퀴틀람의 작은 렌트 사무실에서 시작했습니다.


2024년, 같은 코퀴틀람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건물로.
— COSHIP 대표 Stella
댓글